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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전쟁의 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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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태환목사
댓글 0건 조회 186회 작성일 23-10-1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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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틴 하마스의 전쟁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점점 더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길게는 수천년의 싸움이라 할수 있고, 짧게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건국과 시작이 된 100년의 전쟁이라 할수도 있습니다. 

이 전쟁은 잠시 멈출수는 있지만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가 먼저 잘못했느냐는 사실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에서 아무리 옳고 그름을 말한다 하여도 당사자들에게는 풀수 없는 매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계1.2차 전쟁을 지나면서 복잡한 정치가 개입하여 만든 문제입니다. 


이 전쟁을 보면서 요나서가 기억이 났습니다. 


요나는 선지자로 선택될만한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 아무 자격 없는 사람을 하나님이 택하시지는 않았을테니까요. 

그렇지만 요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요나서는 열린 결말입니다니느웨는 회개하였지만 그것은 잠시얻은 기회일 뿐입니다. 그리고 요나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인 니느웨가 회개하는 것이 싫었고, 그 불만이 분노로 드러내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요나서는 끝나버립니다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아브라함이라는 한 뿌리의 문제입니다. 

이스마엘의 자손과 이삭의 자손이 여전히 대립하며 죽고 죽이는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것입니다. 


그 이후에 요나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요나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은 분명합니다. 

요나서의 주제는 '니느웨의 구원' 이라기 보다는, 요나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의 욕심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불평과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선지자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선지자가 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하든지 스피커로서의 역할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나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 자체를 거부하고 도망가버립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어쩔 수 없이 니느웨로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다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설렁설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40일 후에 멸망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선지자이기에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냥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선지자를 보낸다는 것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니느웨는 회개하고 멸망을 피합니다. 잠시간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요나는 자신이 기대했던 대로 되지 않으니 불평과 원망이 넘쳐납니다.

땡볕 아래에서 니느웨의 멸망을 구경하려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박넝쿨을 준비하시고 햇볕을 가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박넝쿨로 인해 만족할때에 그것을 말라죽게 하십니다


요나의 분노를 보십시요

수 많은 생명보다 자신에게 유익한 박넝쿨 하나에 더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는 존재들입니다

니느웨의 회개는 기뻐해야 하는 일이지만, 민족주의자의 요나에게 니느웨는 원수이고 멸망해야 할 대상일뿐이였습니다

선지자이면서 하나님의 마음보다 자신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지역. 더 나아가서는 이슬람과의 전쟁의 역사를 보면서, 한 때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이 더 심할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 전쟁외에는 답을 찾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의 정통성을 찾기 위한 그들의 전쟁은 이제는 한 쪽이 사라져야 해결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은 약속의 땅 예루살렘을 양보할수 없고. 

이슬람은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자로. 또한 그들의 민족적인 근원을 회복하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코란이라는 새로운 경전이 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를 더 깊이있게 묵상하게 됩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회복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양보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으면 용서는 없습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것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다행인것은 그들모두가 구약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참된 구원자되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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