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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면 충분합니다. 마가복음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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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태환목사
댓글 0건 조회 343회 작성일 21-08-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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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두 렙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마가복음 12장


2000년대를 지나면서 십일조에 대한 논쟁이 거세졌습니다. 

자유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십일조는 구약의 가르침이고, 유대인을 향한 율법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개혁교회는 

십일조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지금도 인터넷을 보면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철저한 십일조를 가르치는 교회도 등장합니다. 

무엇인 옳은 것일까요?


우선 헌금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기준을 보아야 합니다. 

헌금은 ‘돈’의 개념이 아닌 ‘예물’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아브라함에 의해서 처음 등장하는것처럼 보이지만, 고고학적 기록을 보면 10분의 1은 당시 족장 시대 신앙인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드려지는 ‘예물의 분량’이였습니다. 


단지 모세를 통해 율법으로 재정이 되었을 뿐입니다. 

출애굽한 광야 공동체에게 주어진 십일조와 지금 교회에 적용되는 십일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은 ‘의무’이고 신약은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설명을 더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하신 생명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의무가 되는것입니다. 

광야 공동체에게는 철저한 십일조를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광야 공동체에 주어진 법은, 오늘날로 이야기 하면 특별법에 해당이 됩니다. 

우리나라도 특별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군법’입니다. 

동일한 죄라도 더 엄격하고, 사회에서는 죄가 되지 않는것도 군에서는 엄하게 다룹니다. 

그 이유는 바로 ‘특별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전쟁이 목적인 공동체입니다. 


군법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입니다. 

총알이 날라다니고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지휘관의 명령을 수행할수 있는 집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법이 엄격합니다. 

광야는 430년간 노예의 삶에 익숙해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뀌어야 하는 장소입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언제든지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연약함과 유월절의 체험 즉, ‘갈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그들은 애굽이 섬기는 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뼈속까지 그들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철저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입니다. 

광야공동체는 하늘의 만나를 먹으며, 메추라기를 먹으며, 성막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은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것이며, 제사와 삶의 경건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임을 훈련받는 중입니다. 

그 훈련중에 하나가 바로 십일조 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위해서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 14장에서 십일조는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것과 성전을 보수하고 수리하는 것, 

그리고 민수기 18장에 보면 제사장의 몫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인들에게는 가나안에서의 분깃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이 평생의 의무였고, 가나안 땅에 흩어져서 각 지파의 예배를 돕는 이들로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이야기 하면 전임사역자들이 있었고, 평소에는 일을 하다가 일년에 일정한 기간을 성전에 들어와서 의무를 

행하는 레위인들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성전의 의무가 우선이였기에 농사를 짓는다던지 전적인 생업을 가질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땅을 분배받은 지파들의 십일조를 통해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갈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11지파가 하나님과 멀어지면 레위인도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십일조가 사라지면 레위인들도 성전일이 아닌 생계를 위해 일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헌금이 무너지면 교회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물을 통해서 교회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십일조 문제가 생기는 이유중에 하나는, 몇몇 목회자들의 화려한 삶과 잘못된 재정관을 가진 목회자들 때문에 

헌금이 ‘돈’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의 대부분은 미자립교회입니다. 

통계마다 다르지만 80%는 최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생계를 위한 일을 합니다. 

그런데 대략 10%의 교회의 목회자는 부유한 삶을 삽니다. 

그리고 몇몇 대형교회는 재벌과 같은 삶을 삽니다. 


목회자가 억지로 가난하게 살 의무는 없습니다. 목양에 최선을 다하는 목회자는 부유함이 생겨도 누릴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가 자립이 된다면 교회는 목회자의 생활을 부족하지 않게 지원해주는 것은 맞습니다. 

상황과 형편에 맞게 지급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하게 생활비를 지급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목회자가 ‘억’단위의 재정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왜 목회자들이 비싼 문화생활을 즐겨야 할까요? 

구약의 제사장들이 타락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는 것이 제사를 소홀히 하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을 빼 돌리는 것이였습니다. 

신약시대에서 성전 제사장들은 타락하여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의 경기를 보러 다녔습니다.

낮은 레위인들에게 일을 맡기고 스포츠를 즐기며 다녔지요.  

이것이 문제가 되는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중에 누가 화려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런데 수억의 외제차에 별장을 가진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극소수의 목사들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부끄러운일이 아니라 목회의 성공으로 비취지는 것에는 모두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는 헌신예배 설교를 가면 천만원이 넘는 설교비를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담임에게 잘보이려는 목회자들이 줄을 선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돈으로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자나, 그 돈을 보고 줄을 서는 자나 다를게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총회적인 차원에서 목회자 생활비의 상한선을 정할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목회자를 가난하게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차고 넘쳐서 목양은 하지 않고 휴가때마다 해외 여행을 하는 목회자들, 

별장을 만들어 놓고 소위 성공한 목회자들끼리의 모임을 만드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타락이기 때문입니다. 

혼자만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사들도 그렇게 만듭니다. 


기업은 성공하면 사장이 더 많은 돈을 가져가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기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흥의 복을 주시면 더 많은 교회로서의 일을 해야 하는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12장38절부터 조심해야 하는 사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 당시 옷은 신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문안을 받는 것, 시장은 주로 자신의 얼굴을 알리려는 이들이 기웃거리는 곳입니다.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것, 그들이 바로 서기관이였습니다. 


소위 성공한 목회자들이 가지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입니다. 외식으로 기도를 길게 합니다. 

자신의 경건을 그렇게 드러내려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너질 자들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심판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렇게 살수가 있을까요?


가난한 여인의 두렙돈의 헌금을 예수님은 가장 많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돈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예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올바른 교회를 세우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헌금에 대해 부정적인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십일조를 교회에 드리지 않고 이웃을 돕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이들도 많습니다. 틀린것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있습니다. 


왜 교회는 헌금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여서 성도들이 갈등하게 하는가? 

‘교회’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공동체적인 사명중에 하나입니다. 

자유신학자들에 의해 교회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은 당연히 교회의 소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폭발적인 부흥은 성도들의 결단과 헌신이였습니다. 


수많은 목사님들은 ‘돈’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헌신하였습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는 삶을 사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성도들은 교회를 믿고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교회에 ‘예물’은 사라지고 ‘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회는 돈의 문제로 다투고, 교회는 부흥의 은혜를 받으면 좋은 건물과 땅을 사는 것에 우선적으로 사용을 합니다. 

성도는 없는데 교회를 크게 지으면 채워주신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는 분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앉을 자리가 없으면, 도저히 불편함을 견딜수 없을 때에 더 크게 지어도 됩니다. 

교회는 돈이 아닌 예물을 가르쳐야 합니다. 

먼저 항존 직분자들이 돈이 아닌 예물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오래전에 있어던 교회에서 십일조로 인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재정을 담당하던 안수집사님이 작심발언을 했습니다. 


“우리교회 장로님 13분 중에 5분은 십일조를 안합니다. 안수집사일때는 그렇게 열심히 하시더니 장로님이 

되시고는 몇 년하시고는 안하십니다. 장로될려고 십일조 하셨습니까?”


꽤 오래동안 교회는 회복할수 없는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헌금은 예물입니다. 억지로 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해서도 안됩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이 땅을 살아가는 내 삶의 이유가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임을 알고, 

올바른 교회를 세우는 것이 공동체적인 사명임을 알 때, 나의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헌금이 예물로 사용됨을 성도들이 알게 해야 하고

성도는 헌금이 돈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고백임을 알아야 합니다. 


헌금이 돈으로 보이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언젠가 내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 이심을 분명히 고백하게 될 때에, 즐거움과 기쁨으로 하면 되는것입니다. 

억지로 내는 헌금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예물이 아닌 돈은 교회에 다툼을 일으키게 됩니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교회와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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