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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 하나님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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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태환목사
댓글 0건 조회 1,340회 작성일 20-02-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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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9장35-37절


신종 코로나가 모든 사람의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질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인터넷에 신종코로나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하시는 목사님들이 있는데, 그렇게 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냥 물어보는 분들도 있지만 심각한 분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설교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냥 질병일뿐인데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특별한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시선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 나아와서 표적을 구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 특별함은 가뭄이나, 전염병이나, 특이한 자연현상일때가 많습니다.

특별함은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성경에는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이 심판은 크게 두 종류로 볼 수 있습니다.

지역적인 심판과 전체적인 심판입니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입니다. 가끔은 이스라엘과 관계된 이웃나라에 대한 심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국한된 심판입니다. 이 두 가지를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전체적인 심판의 대표적인것은 노아홍수입니다. 창세기6장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노아홍수를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까? 그냥 비가 많이온 자연재해가 아닌가요?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심판으로 알았을까요?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비가오기 전까지 그들은 먹고 마셨으며, 그들에게는 심판이 아닌 ‘홍수’였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산꼭대기에서 배를 만드는 노아를 조롱하였습니다. 당시에 인간의 수명은 길었고, 대략 1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노아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산꼭대기에 배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배는 원래 물가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왜 산 꼭대기에서 만들었을까요?


산꼭대기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배의 크기도 어마어마합니다. 사람들은 궁금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외면했습니다. 미친것이라 생각했고, 관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산위에서 배를 만드는 것 자체가 구약의 선지자적인 메세지였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못할뿐더러 ‘하나님은 없다.’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였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은 심판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그들은 그것이 심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심판을 심판으로 알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건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입니다. 히스기야왕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라는 거대한 제국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의 대표인 '랍사게'는 이스라엘주위에 토성을 쌓고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포를 놓습니다.


18장25절에 보면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라고 말합니다.


랍사게는 이스라엘에게 너희 왕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고, 지금 상황을 보라고 합니다.


거대한 군사가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곧 멸망이 눈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앗수르는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이였습니다.

33절에 보면 “민족의 신들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에서 건진자가 있느냐!”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합니다.


이때 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굵은 베를 두르고 회개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특별한 말씀을 주십니다.


19장7절입니다.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놀라운 말씀이 주어집니다.


35절에는 앗수르의 정예부대 18만5천명이 하루아침에 죽는 사건이 기록이 됩니다.

성경은 그들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명을 친지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사건은 성경에만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쥐들의 전염병인 페스트로 전멸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책인 ‘유대고대사’에는 “하룻밤에 수많은 쥐떼가 나타나 앗수르 군의 활과 그 밖의 무기를 갈기갈기 쪼아 놓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요세프스의 기록에는 전염병으로 인해 18만5천이 전멸했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모든 군사를 잃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돌아가서는 자기 아들들에게 살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바벨론이 등장하게 된다.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근거를 두 가지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냥’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 되신다는 신앙인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사자가 18만5천명을 죽였다고 말하지만, 일반역사에서는 페스트로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의 정예군대가 전멸하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대로 앗수르의 왕은 군대를 잃고 돌아가고, 아버지가 궁을 비운사이에 반란을 일으킨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 거대한 앗수르 제국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심판. 구원. 부활. 영생. 사탄 이라는 단어에 어느 순간부터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상식적인 생각만을 하게되고, 설교도 도덕적인 설교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설교를 맘 편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상식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예수님께서 물위를 걷는 것이 상식적입니까?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상식적입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하면 살려준다는데, 그것 거부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적입니까?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이 곧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가 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무엇이 심판이고 무엇이 징조이며, 또 무엇이 창조질서 안에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심판은 반드시 회개의 기회가 선포됩니다.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징벌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보내시고, 예언자를 보내시고,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지금의 코로나가 심판이라고 설교하시는 분들은 아마 중국의 상황을 오래전부터 예의주시하셨던 분들일 것 입니다. 저는 그냥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든 중국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는 했지만, 간절하지는 않았습니다.


최근 몇 년전부터 중국은 교회를 불태우고, 선교사를 추방하고 예수 믿는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중국교회는 나라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공산 정권이 무너지기를, 예배가 회복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를 드렸던 이들에게, 그 기도를 아는 이들에게 이번 코로나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것입니다.


어떤 사건을 쉽게 심판이라고 말해서도 안 되지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교회는 무슨 말을 해도 비난을 받게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 만나고 난 뒤로 분명한 삶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갈1장10절 “이제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지금도 그렇습니다. 국가에서 예배를 자제해달라는 말에 사람들의 의견이 나눠집니다.


질병이 무서워서 예배를 못 드리면 그게 신앙이냐? 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고, 조심하자는 나쁠게 뭐가 있냐? 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고속도로를 무단횡단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속도를 건너야할 어쩔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건너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예배를 드리지 말라고 하던 이들도 이 문제가 지나가고 나면 “코로나 앞에 예배를 포기하면 그게 무슨 신앙이냐?”라고 조롱하는 이들이 생길겁니다.

신사참배때도 그랬습니다. 막상 당시에는 신사참배에 대해 입을 다물었던 이들이 지나고 나니 그것이 비난거리가 되었고, 마치 자신은 신사참배에 반대한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많아 졌습니다.

이것을 두려워해서 반드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우리 맘대로 생각하고, 필요할때만 소환해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할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옳은 믿음이 아닙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교회는 예배를 일괄적으로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단 한사람의 성도라도 불안하지만 교회에서 예배드리기를 원한다면 예배는 드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성도들에게 예배를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불안한 이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시면 됩니다. 그런데 교회 예배도 안드리면서 가정에서도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면, 이것은 문제가 됩니다. 이럴때일수록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지 예배를 쉬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네셔널지오그래픽에서 세계인류멸망을 가져올수 있는 10가지 위험에 대해 다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핵전쟁이 1위가 아니라 3위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변종 바이러스는 6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1위는 합성 바이러스 였습니다. 



왜 합성 바이러스가 1위인가 하면, 다른 것들은 거대 자본이 들고 통제가 가능하지만 앞으로 길게는 20년 빠르게는 10년안에 수백만원의 장비만 있으면 가정에서도 합성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연두의 치사율은 30%입니다. 그런데 어느 대학에서 치사율100%의 천연두 합성 바이러스를 만들었다가 폐기 하였다고 합니다. 그 실험의 목적은 합성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쉬우며, 그래서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과학자들은 100년안에 모든 질병은 해결이 되고, 과학의 발전으로 더 이상 굶어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은 끝이나고 종교는 사라질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질병이 나타나고 우리의 삶은 더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반나절이면 지구 반대편으로 옮겨가있습니다. 


과학에 대한 회의론자들이 등장합니다. 인류는 하루아침에 멸망할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과학에 의해 인간은 풍요를 누리지만 과학으로 하루아핌에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 합니다. 


아이슈타인 박사는 살아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계3차대전에 어떤 무기가 쓰일지 나는 알수 없지만 4차세계대전때는 몽둥를 들고 싸울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3차대전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과학자들의 대부분이 말하는 인류의 종말은 성경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는데. 인류의 종말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종말은 어느 순간 갑자기 온다는 것입니이다.


지금 이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사람들이 생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심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 어려움도 몇 달쯤이면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 시기를 통해 중요한 것을 깨닫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 믿음은 우리의 모든 삶에 적용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풍요로움에 머물러서 거부감을 느끼는 심판. 영적. 부활. 사탄과 같은 영적인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곳곳에서는 영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세계는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 국가 공산주의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세계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이슬람이 더 이상의 세력을 넓히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기독교 국가가 아직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공산주의가 더 이상 확장되지 않는것도 자유 민주주의의 힘이 아직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안전한 삶이 우리 스스로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큰 울타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말라. 미국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것은 그 나라가 선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들이 하는 행동이 정의롭기 때문도 아닙니다. 세계의 균형이 무너질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는 말고, 조심하십시오. 하지만 이것이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의 성도들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기도할때임을 알아 온전히 예배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참고 - 세계를 멸망시킬수 있는 10가지 위협 / 네셔널 지오그래픽 


1위 새로운 바이러스 합성 / 2위 초지능 기계 / 3위 전쟁 – 버튼 한번으로 수천개의 핵미사일이 발사되는 현실. 핵전쟁 후 핵겨울은 가장 고통스럽게 사람을 죽인다. / 4위 기후재앙 / 5위 위험한 물리학 실험. 인공블랙홀 – 지금 과학자들이 하는 실험중에 몇몇가지는 결과를 알수 없는 실험이라는 경고 중에도 진행. / 6위 변종 바이러스 / 7위 외계 생명체(있다는 가정하에) – 영화에 종종 등장. 8위 자연재해 / 9위 혜성 - 몇 번 위험한 상황을 넘겼음. / 10위 태양의 부분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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