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목회칼럼
간절한 예배
장태환목사 2026-03-03 화요일 12:24:25 2 0

지난주 아침 일찍 누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너 보고 싶단다. 올 수 있겠냐?"

급하게 준비를 해서 아내와 예리를 데리고 대구로 갔습니다. 


아버지는 며칠 잠을 주무시지 못하였고, 호흡이 힘들어 숨을 쉴 때마다 거친 소리가 났습니다. 

아버지는 일어서지 못하시고 누워서 하고 싶은 말을 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다해 목회를 해라. 숨 쉬는 것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이게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 것 같다. 이제 내 삶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호흡할 수 있게 가족들이 기도해라." 

그렇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다 끝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들로서, 후배 목사로서 디모데후서 4장 7.8절 말씀을 읽어 드렸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목회를 해보니 현역일 때 목회 잘하는 것보다, 은퇴 후가 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국 교회 어른 목사님들이 목회는 잘했는데 은퇴 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세습과 돈의 문제, 내려놓지 못하는 권한의 문제. 하지만 아버지는 은퇴하시고 23년 간 

여전히 성도의 사랑을 받으시고 겸손하셨으니. 자녀에 대한 염려와 근심. 

남은 어머니에 대한 걱정도 내려놓으시고, 그렇게 기대하셨던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러 

자녀들을 기다려 주세요. 곧 따라가겠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전서 5잘 7절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너희 염려를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


아버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에 대한 염려는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걱정 마시라 말씀드렸습니다. 

아들 세 명이 다 목회를 합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실수하고 절망할 때도 있겠지만 

결국은 하나님 나라에서 만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라 말씀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니 아버지는 주무셨습니다. 

며칠 잠을 자지 못하셨던 아버지는 그렇게 주무시고 호흡이 좋아지셨습니다. 

어제 월요일에 예리를 기숙사에 태워주면서 전화를 해보니 손님들이 오셨고 앉으셨습니다.

예리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 열심히 공부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아버지 응급실에 119차를 타고 가시는 중이야. 응급 대원이 병원에 가면 생명 연장 장치를 할거냐고 묻는데, 아버지는 그거 싫다고 하셨으니 안 하신다고 하면 되는거 맞지?"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해야지. 거부하는 게 맞다."

가족은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싶은 마음에 망설이지만, 

아버지는 몇 번의 위급 상황에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셨습니다. 


아버지의 삶에 가장 큰 것은 예배입니다. 

늘 무엇을 하든. 예배가 가장 우선이었고 교회가 먼저였습니다. 

작은 교회에 부임하여 크게 부흥하고 성장하였지만 마음과 태도는 늘 작은 교회 목사였습니다.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을 늘 부담스러워하셨고, 성도들이 비싼 선물을 주면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좋은 자가용을 사준다고 하셨을 때도 몇 번을 거절하셨습니다. 


그 속마음을 자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가 비싼 자가용을 몰고 가난한 성도 집에 심방 가면 그 예배가 위로가 되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사준 비싼 옷을 입으시면서도 늘 부담스러워하셨던 아버지.

그 삶에 예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겨진 시간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아마 아버지는 지금 혼자만의 예배를 드리고 있으실 거라 확신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예배로 훈련 받아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것은 빼앗겨도 마음의 예배는 

빼앗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 마음의 예배는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간절한 예배가 우리의 삶에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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