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아들인 준수가 지난주 군 후임을 만나러 갔다가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이렇게 말하는 목사님이 옳은 거예요?"
처음 보자마자 하는 말이 "방언 받았니?"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젊은 여자 목사님인데 첫 질문이 방언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교회 밖에만 이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를 검색해보니 좀 애매한 것이 있었습니다.
출신 신학교는 문제가 없었지만 목회의 방향은 문제가 있습니다.
복음 안에는 신비가 있습니다. 은사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생명의 말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덜 중요한 것이 되면 그것을 왜곡이라고 합니다.
주민등록증을 보면 예외 없이 증명사진이 들어갑니다.
손 사진을 올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 손이지만 이 손으로 나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은사는 복음으로 증명되는 귀한 선물이지만 복음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회개는 필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은사는 선물이며 각자가 다르게 받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단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신비적 체험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이적과 기적과 은사와 같은 신비적 체험입니다.
아들이 말한 대구의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습니다.
교회를 소개하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담임 목사님이 큰 은사를 체험하고 교회를 개척했다는 내용과
눈치 보지 않고 방언을 마음껏 할 수 있고, 방언을 받을 수 있다.는 소개였습니다.
이단과 사이비는 손을 얼굴이라고 속입니다. 다리가 얼굴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복음의 진리가 1순위가 되어야 하며, 그것은 십자가의 사랑과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아들에게 고린도전,후서를 조용히 묵상해 보고 난 뒤 대화를 해보자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바로 은사주의였습니다.
방언은사를 받은 자들은 받지 못한 자들을 믿음이 없다 정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가 교회를 분열시켰고 교회 안에 파벌을 만들었습니다.
선물이 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은 고린도전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13장이 말하는 사랑은 보편적 사랑이 아닌 십자가 사랑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 구절이 은사에 대한 바울의 결론 입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여러 은사에 대해 기록하고 시작되는 것이 바로 13장 사랑입니다.
은사주의에 빠진 고린도교인들의 파벌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당시 방언을 최고라 하는 이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봉사와 헌신을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이 없다.
이것이 바울의 결론입니다.
신비로운 체험을 한 사람이 무례해지고 교만해진다면 그 은사는 잘못된 은사입니다.
신비주의 신앙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무례합니다.
반말을 잘 합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도 반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리다 싶으면 무조건 반말입니다.
이러한 무례를 분별하지 못하면 신비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복음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인합니다.
겸손합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고린도전서 13장은 올바른 은사를 분별하는 기준입니다.
최고의 은사가 바로 십자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그 사람이 진짜가 아닙니다.
성경은 낮아지고 겸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진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성경의 기준을 말씀으로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 십자가의 사랑으로 믿음을 채워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