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고,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며 이것이 결국 공동체를 무너뜨리게 될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권. 자유. 공의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질서를 지키는 범위 안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자유와 인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주장하는 인권과 자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샤워를 하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어릴 때 기억이 나서 그렇습니다.
새벽 기도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연탄 곤로 위에 물을 끓이는 것입니다.
샤워는 목욕탕에나 가야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뜨거운 물 한 바가지에 찬물 두 바가지를 섞어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는 것이 아침 일과였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마당에서 세수를 하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싫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한 겨울에도 따뜻한 샤워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 감사가 되는 것은 어릴 적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때 교회 수련회를 가면 공동샤워 시설에 그것도 대부분 야외에 있었습니다.
수건하나 들고 치솔 치약 들고 친구들과 함께 장난치며 씻던 그 불편함이 지금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수련회를 가도 좋은 방에 세면 시설이 안 좋으면 아이들은 안 갑니다.
세상은 점점 좋아지지만 인간은 더 약해지고
과하게 누리고 있지만 불편한 것만 늘어갑니다.
예배도 편해야 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아야 합니다. 예배가 서비스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은 기계와 경쟁하는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줄 몰랐습니다.
대학 시절 영화로 보면 많은 것들이 현실에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그 영화의 내용이 현실에 닥칠것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대학이 붕괴된다고 합니다.
이제 인간은 인공지능보다 자신이 나은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직장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간단한 서류 작업의 경우 인간 10명이 하루 종일 하던 일을
인공지능은 10분 만에 끝내 버립니다.
인공지능은 태어날 때 부터 아이슈타인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인간은 언어를 배우는 것에만 10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가장 먼저 사라지는 직업이
인공지능을 만든 프로그래머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들고 인간에 대한 학습은 끝났다고 합니다.
불편함을 참을 수 없는 인간이 과연 인공지능의 통제를 받으면 편할까요?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시대를 살아갈지 모르지만
돈과 실용성이 중심인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80억이나 되는 인구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한 아담에게 수고하고 땀 흘리게 하셨습니다.
노동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가 됩니다. 일하지 않는 인간은 죄와 더 가까워집니다.
권력과 명예를 쥔 자들의 생각은 우리와 다릅니다.
애굽 왕 바로의 교만은 자신의 말 한마디에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교만이었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입만 벌리면 국민 눈높이를 말하는 정치인들이 국민의 눈높이를 알까요.
그들 중에 살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대출을 갚기 위해 밤새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녀의 취업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그들이 정말 국민을 위해서 일할 수 있을까요?
제가 그런 자리에 가도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수많은 인간의 생각과 고집과 철학이 뒤섞인 세상에
사람들은 조그만 불편해도 외면 하고 거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조차 평가하고 필요한 것만 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치에. 개인의 욕심에 이용하는 이들만 늘어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질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질서는 불편한 것입니다. 편리를 위해 바꾸면 안되는 것입니다.
질서가 무너지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세계적인 인류학자들은 이제 현 인류의 종말이 왔다고 선언합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인간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한계점에 도달했고
결국 자연은 인간의 멸종으로 스스로를 살릴 것이라 합니다.
불편해도 참아야 하는데.. 인간의 욕심은 스스로를 죽이게 됩니다.
더 편할 필요는 없는데..
대부분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행복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이 못 먹는 것을 먹는 것. 남이 가지 못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것.
남들보다 더 넓은 집에 사는 것. 남들보다 좋은 자가용을 모는 것.
비교하고 다름을 통해 만족감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인간은 늘 나보다 높은 곳을 보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을 보며 얻은 행복은
나보다 큰 집에 사는 사람을 만나면 불행이 됩니다.
소수의 사람은 비교가 아닌 감사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가치관이 다른 것입니다. 믿음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이 행복이 되어야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