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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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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태환목사
댓글 0건 조회 1,259회 작성일 19-04-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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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15.21절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 까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마지막 강론입니다. 마치 유언과 같은 아주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그리고17장에는 예수님의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완성을 ‘신비’하거나 ‘예언’이나 ‘병 고침’이나 ‘선지자적 사명’으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뭔가 특별하고 어려운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15장12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 이니라 17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도덕적인 삶을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믿음의 완성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예언의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 삶이 헌신적이여서 남들이 보기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엄청난 말씀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예언을 하고 사람의 미래를 척척 맞춘다면 다른 아무런 것도 보지 않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편협하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켜도 상관없다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산을 옮길만한 기적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어도 우리는 그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산을 옮기는 기적을 보여주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옳다고 생각하고 따를 것입니다.


최근에 이단 교주 한명이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10만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주가 강간으로 교도소에 간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많은 병고침과 특별한 능력이 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안다면 특별한 능력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 참된 사랑과 긍휼과 정직이 없는 것만으로도 잘못된 것임을 판단할수 있을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도 자신의 모든 것을 구제하는 것에 쓸 수가 있고 자신의 몸을 죽음에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 없이 부흥하는 교회 있습니다. 예언이나 능력이 일어나서 부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수적인 부흥과 재정이나 좋은 건물을 위한 기도는 안하셔도 됩니다. 먼저 사랑의 열매를 통해 부흥하는 교회되기를 기도하고 소망하십시오. 방언하고 예언하는 것보다 사랑하기를 사모하십시오. 그게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예수님이 왜 고난을 길을 가시고 죽으셨습니까?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이 ‘사랑’이였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은 기적을 일으킬 능력이 있다면 언제 사용하겠습니까? 로마군인이 나를 잡을 때,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드러내는 것에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과 고아를 품으실 때, 그들을 먹이기 위해 기적을 베푸셨고, 성전에서 쫒겨나 살아가는 문둥병자를 위해, 걷지 못하여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를 위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정작 자신에게 기적이 필요할 때에 성경의 말씀을 이루고자, 그 사랑을 통해 우리를 주의 자녀로 확증하시기 위해 십자가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2천년이라는 기독교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평생을 고아와 과부와 병자를 돌보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간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왜 입니까?


예수님이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능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따라 갈 수 있는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교인중에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 없습니다. 모든 병자를 고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 주신 은사가 있는데,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한 때 저의 고민은 교회에 더 열정적인 사람들의 강팍한 모습이였습니다. 밤새 기도하는 성도가 주위사람들에게 늘 상처를 주고 괴롭히는 것도 보았습니다. 항존 직분자들이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멸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목사들이 성경적인 지식으로 자신의 소견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또는 교회생활은 열심인데 직장이나 가정에서 강팍하고, 악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멋들어지게 기도하고 헌신하는데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은 대단한데 사람들에 대한 긍휼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한 위기를 느끼지 못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요한1서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로마서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난 사람의 첫 변화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바울은 사랑에 대한 분명한 주장이 있습니다.


그가 율법에 매였을때, 유대인 외에는 사랑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죽여야 하는 대상이였고, 이방인은 불결한 죄인이였기에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줄 필요도 없었습니다. 유대인 외에는 긍휼의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다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의 문이 열려도 도망하지 않고 간수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복음의 진리’에는 타협하지 않지만 진리를 외치는 도구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순교의 길로 나아갈 때,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은 있었겠지만,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예수를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불합리와 박해와 핍박 속에도 사랑으로 행하는 참된 성도였습니다. 우리가 이단을 대하는 태도는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잘 안다는 이들이 더 강팍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회의 문제나 정치의 문제에 긍휼과 애통하는 마음이 없이 분노하고 선동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갈라디아서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성령의 열매의 첫 시작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더 알기를 원한다면 내 마음의 ‘강팍함’을 버려야 합니다.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거나, 감정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독감이 유행입니다. 누군가 마스크를 하면 ‘감기에 걸렸냐?’고 물어봅니다. 기침을 해도 물어봅니다. 감기가 걸리면 당연히 드러나는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드러나는 증상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겁니다.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사단이 유일하게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척은 합니다. 목적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단들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용서하고 품어주는 사랑은 안 됩니다.


마태복음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선지자라 칭함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아주 유창하게 기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짓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1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영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아야 합니다. 많은 거짓이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하지만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는 많은 거짓이 우리가운데 있습니다. 교회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로 세워졌습니다. 예수님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세운 것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기도가운데 온전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고 구제하기 위해 세운것입니다. 목사를 세우고 장로를 세우고 집사를 세우는 것은, 교회가 질서있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모여서 우리끼리 은혜를 누리고 체험하는 것으로 끝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세상으로 파송된 공동체이며, 교회는 그 교회가 있는 지역에 생명의 방주가 되어야 합니다. 가깝게는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직장에서 지역에서 내게 맡겨진 삶의 모든 자리에서 나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망이 전해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그리스도를 닮는 증거는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묵상하는 것이 바로 사순절입니다.


요한복음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의 시대에 살고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그 기적에 참여하고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온전한 믿음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배불러서 혹은 배부를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 그 기대감으로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그것은 사랑받고, 그 받은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 예수님은 또한 세상을 사랑하셔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사랑을 통하여 위로받고, 사랑으로 다음세대를 세우고, 그 사랑이 교회의 담을 넘어 이 지역가운데 전하여 져서 부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말씀과 찬양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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