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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태환목사
댓글 0건 조회 462회 작성일 23-01-14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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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서의 헌금. 

목사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레위인도 아닙니다. 목사를 구별된 제사장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말한다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진짜 구약의 제사장으로 생각한다면 그리스도로 인해 완성된 율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성소’와 ‘지성소’는 열렸으며, 이제는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자격을 모든 성도들이 얻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두는 영적인 레위인이며, 제사장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레위인이 사라진 교회는 십일조를 해야 할까요? 십일조는 어떻게 사용되어져야 할까요?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제자를 택하여 사도를 세우셨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은 구약을 그림자로, 예수그리스도를 본체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완성된 그리스도의 복음안에 세워진 직분들이 있습니다. 크게 구별하면 ‘전적인 사역자’와 ‘부분적인 사역자’들입니다. 

전적인 사역자는 목사와 선교사, 교회의 직원들입니다. 부분적인 사역자들은 모든 성도들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우리의 신분의 변화입니다. 

구약에서는 11지파와 레위인이 있었고, 제사장의 무리가 있었다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거룩한 주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두는 영적인 레위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제사장, 성도는 평신도라는 개념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는 ‘레위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전적인 사역자들이 있고, 항존 직분자들은 성전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전임 사역자의 삶을 살게 되는것입니다. 

그 중에 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치리를 감당하고, 목사는 말씀과 목양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직분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형편에 따라 스스로 일하기도 했지만, 복음전도를 위해 지속적인 헌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초대교회에 사도들도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하여 일곱집사는 세웠습니다. 

지금도 교회는 전적인 사역자들이 필요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교회는 자연스럽게 역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종종 십일조는 구약의 제도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이니 교회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를 드러냅니다. 

마태복음 23:23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은 정의와 공의가 없는 형식만 남은 헌금에 대해서는 경고하셨지만 율법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다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은 율법의 본질적 의미를 잊어버린채 의무적으로 지키기만 하는 이들에게 율법은 완성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전에 ‘성전세’와 모든 ‘율법적 의무’를 지키셨습니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핍박하고 박해하려 하였지만, 예수님은 무엇보다 율법을 지키시는 분이셨습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성전을 오르셨고,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하셨지 율법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9: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성전이 잘못된 일을 행하는 것에 분노하셨지 성전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이비와 자유신학자들은 교회를 부정하려 합니다. 

교회가 헌금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헌금을 부정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막대한 이득을 취합니다. 

예배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예배를 부정합니다. 굳이 교회가서 예배를 드릴필요가 없다던지, 헌금을 교회 할 필요가 없다던지, 전혀 성경의 말씀과는 상관없는 말들을 합니다. 

교회의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이 자신의 소망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신앙의 고백인 십일조는 구약의 제도를 근거로 교회를 위해 전적으로 사역하는 목회자와 직원을 위해 사용되어지고, 또한 가난한 자와 이웃을 위하여 사용되어 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생활비는 최선으로 지급을 하되, 과하게 지급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가 목회에 전염할 수 있는 지원을 넘어서면 안됩니다. 목회보다 교회정치에 더 관심을 가지거나, 고급스포츠를 즐기고, 화려한 삶을 즐기거나, 유명세를 얻어서 자신의 교회를 비우고 다니면서 수천만원의 생활비를 지급 받는 것은 목회자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일 년에 수차례 해외선교 명목으로 여행을 다니는 모습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믿을만한 선교사를 지원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제도적으로 목회자 생활비의 상한선을 두어야 합니다. 검소하게 살면서 필요한 만큼의 생활비를 기대해야지 교인의 수가 많다고 끝없는 사례를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헌금은 자원하는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초기 교회의 십일조와 헌금은 구제와 복음전도에 사용되어졌습니다.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놓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소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원하여 헌금하고 가난한 자들을 도왔습니다.  

어려운 교회를 돕고, 궁핍한 자들을 위한 헌금은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돈이 모이는 곳에는 악한 이들이 모입니다. 


아름다웠던 교회가 돈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교회는 돈에 의한 타락이 넘쳐났습니다. 

사제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소유하였고, 여러 아내를 두고, 별장을 두고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돈을 주고 사제직을 사는 이들이 생겨났고, 어린 자녀에게 사제직을 물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문제들 때문에 사제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종교개혁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였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단순한 성경의 진리가 사라져버린, 돈과 권력이 예수님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교회의 자정운동이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회는 청교도 운동으로 순수한 복음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500년이 지난 지금, 교회는 다시 정치적 욕심과 권력과 돈 앞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올바른 헌금의 의미는 사라지고, 한쪽은 헌금을 돈으로 만들어 버렸고 반대쪽은 구약의 제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십일조는 삶에서 드려지는 ‘행하는 믿음’의 한 부분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을 행하는 공동체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돈에 관심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구별된 헌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헌금을 통해 교회는 일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십니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제자 삼고,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의 가르침이 선포 되어져야 하며, 초대교회때부터 시작된 이단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오실때까지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올바른 헌금을 통해 교회는 회복되어집니다. 온전한 헌금이 회복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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