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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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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태환목사
댓글 0건 조회 490회 작성일 22-11-2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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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루터는 법대에 진학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큰 폭풍우를 만났고, 강한 벼락이 주위에 떨어지자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2주후 그는 법대를 그만두고 수도사가 되기로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고, 그 일로 아버지와 관계가 악화되어 몇 년간 의절하고 지내게 됩니다. 

이후에 루터의 남동생 두명이 전염병으로 죽게 되고, 아버지가 루터가 집례하는 미사에 참여함으로 화해하게 됩니다. 


수도사가 된 루터의 오랜 고민은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 였습니다. 

그러한 고민은 루터로 하여금 철저한 수도사 생활을 하게 하였으나,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자유를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은혜가 믿는 모든 자에게 선물로 주어진다는 진리를 알게 되고 난 후였습니다.  

경건의 생활을 철저히 할수록 더 하나님의 공의 앞에 두려움을 느꼈던 루터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비로써 사도바울과 같이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참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가 되기 이전에 루터가 배웠던, 그리고 믿었던 신학적인 사상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창세기의 말씀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인간은 죄를 통해 창조의 본래적 의미를 잃어 버렸지만,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은혜와 협력할수 있는 자격은 남아 있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을 ‘신인협력설’이라 합니다. 


즉 인간과 하나님이 협력하여서 원래의 창조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즉 인간의 노력이 일정부분 구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에 주어지는 동기부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은혜와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문제는 그 은혜는 성경의 말씀이 아닌 교회를 통해서만, 사제를 통해서만 받을수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전히 믿는 순간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이 되고, 우리의 행위는 구원받기 위한 행위가 아닌 구원받았음을 증거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인간과 하나님의 중재자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교회는 제도화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고, 은혜도 없습니다. 

오직 예전(세례.성찬.고해성사 )에 참여함으로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교회와 사제를 통해서만 은혜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교회와 카톨릭의 구별점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도 예배는 중요합니다. 여전히 예배는 신앙생활에 중요한 가치를 가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예배들은 개혁이전의 종교적 행위와 무엇이 다른것일까요?


구원받기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았기에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강요되어져서는 안되고, 믿음의 행위는 구원이 아닌 구원받은 믿음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9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이미 받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이것이 바로 영적 전쟁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들 모두가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에 빠진이들이 있었습니다. 광야 40년은 그 능하신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그 은혜를 잃지 않고 지키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다는 것은 나쁜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믿노라 하면서 방종하고, 믿음의 열매 없이 살아가는 세대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강조되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할때가 많습니다. 

"성도들이 더 열심히 예배를 드렸으면, 더 열심히 헌신하였으면, 강제로라도 시켜야 할까?."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 조차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성도들이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이 되기를, 그 삶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 자원함으로 드려질수 있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전의 교회의 예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세례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는 반복적으로 행할 수 없는 것이였기에, 성찬과 고해성사가 종교적 예전으로 중요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반복되고 지속적인 것이 행함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서 드리는 회개기도가 고해성사입니다. 


고해성사는  

①  회개 – 진정으로 슬피 뉘우쳐야  ② 고백과 사면 – 사제는 죄책을 사면하는 것. ③ 보속 – 죄를 면할수 있는 행위를 정해준다. (금식. 구제연보. 기도. 순례. 미사. 면죄부등) 

당시 교회는 마리아와 여러 성인들은 선행을 너무 많이 해서 공로가 넘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공로를 신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을 공로의 보물창고 즉 보고하고 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혀 성경에 나오지 않는 우상숭배의 형태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가 중보자가 되어야 하는데, 교회와 사제와 성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대부분은 헌금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주제에 ‘오직’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것을 기억여야 합니다. 

‘오직’은 단순성을 말하는 것이고, 당시 교회는 복잡한 구원론을 제시하였고, 대부분은 행위로 헌금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라틴어로 기록된 성경이 아닌 헬라어 원어 성경을 번역하면서, 예수님의 본질적 가르침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선포하심으로, 우리에게 의롭게 살아갈 자격과 기회를 주신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이 은혜를 깨닫게 되자 의무적이고 강압적으로 행하던 모든 행위의 모순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적 행위는 구원받은 백성의 은혜의 외침이였던 것입니다. 더 이상 교회와 사제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만나는 경험입니다. 

그 경험 없는 은혜는 결국 율법주의로 돌아가게 되며, 행위로 교만이 드러나게 되며, 결국은 신앙생활에 공허함만이 남을 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의 지식보다 초월적인 체험보다, 놀라운 은사보다 먼저 고백해야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외에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행위도, 어떠한 노력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직 그리스도의 의미입니다.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갑니다. 똑똑한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 일한다고 해서 모두가 병을 진료할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에게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경험하는 교회와 성도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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