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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태환목사
댓글 0건 조회 659회 작성일 22-10-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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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한 오래된 예화가 있습니다. 

군중이 모여 있는 그랜드캐년 깊은 골짜기 위에서, 한 남자가 외줄을 타고 깊은 계곡 위를 건너가려고 합니다. 그는 짐이 가득 실린 외바퀴 수례를 보여주면서 말합니다

내가 이 수례를 밀고 이 골짜기를 건널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손을 드는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손을 든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했을것입니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덤비지는 않겠지! 자신이 있으니까 하겠지.” 


그는 수 차례나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계곡을 자유롭게 오가는 묘기를 보여주었습니다그리고 다시 동일한 질문을 했습니다. 이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정말 믿습니까? 자 그렇다면 이 수례에 타실 수 있는 분 있습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못하였습니다. 진짜 믿는것일까요? 지식과 믿음을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진짜 믿음은 다릅니다. 수례에 탈 수 있어야 진짜 믿는 것 입니다 


수례를 끌고 협곡을 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수례에 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하지만 진짜 믿음은 그 수레에 타는것으로 증명이 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았음을 믿지만,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살거야.”

라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전혀 믿음의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않고, 봉사와 헌신에 대한 마음은 없는데, 믿는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말일까요? 성경에는 우리가 지키고 행해야 할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의 대상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십자가의 사건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은 은혜로만 주어집니다. 


로마서 1장17절말씀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나타나는 것이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깊이있게 묵상하여야 합니다.  

첫 번째 믿음은 무엇이고 두 번째 믿음은 무엇일까요? 믿음이 더 깊어진다는 말일까요? 뭔가 믿음으로 더 많은 것을 할수 있다는 말일까요? 

믿음은 십자가 복음입니다. 성경에는 두 개의 십자가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와 예수님의 명령으로 우리가 지고가야할 십자가 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말씀을 분명하게 해석한다면 이렇게 말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나의 십자가를 질수 있게 되는것입니다. 

원래 우리의 십자가는 죄의 십자가였습니다. 이 십자가는 나의 노력과 의로 해결할수 없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 원래 나의 십자가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고난을 능히 감당하고 이겨내는 믿음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새 것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죄에 매여 살필요가 없습니

이제 새 사람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죄 사함의 은혜와 이제 나의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사명, 이 두 가지를 알게 합니다.

종교개혁당시 루터의 오직 믿음은, 행함이 필요없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없는 행함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믿음 없는 행함이 율법주의가 되듯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열매없는 믿음이 됩니다. 열매는 그 나무를 증명하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가 없으면 열매없는 나무가 되고, 그 믿음은 거짓 믿음이 될것입니다. 


종교개혁의 5가지 주제는, 구원이 율법주의적 행함에서 주어진다는 교회의 잘못된 교리에 대한 성경적인 반론입니다. 

행함이 구원의 주체가 되면, 성경의 권위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며, 십자가의 사건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통로가 막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행함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행함은 무엇보다 귀한 헌신입니다.


하지만 그 행함이 성경의 권위에서 나오지 않을때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발적 신앙의 자세가 아닐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결단이 아닐때에는 교회는 본질적 가치를 잃고, 교만에 빠져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대접받는 이들만이 교회에서 대접을 받고,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교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도의 삶에 성경의 권위가 분명합니까? 값으로 정할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까? 십자가의 사건이 나를 죄에서 해방하였음을 믿습니까?

이 믿음의 반석을 세워가는 오직 믿음의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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