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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함으로 감당하는 사명 / 마가복음 6정7-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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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태환목사
댓글 0건 조회 1,167회 작성일 21-06-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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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시키시고, 실전 훈련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권능을 주어 보내시며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8절부터 그 내용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벌옷도 입지 말라.”


제자들의 복장은 최소한의 복장이면서 부족하지 않은 복장이였습니다. 

지금처럼 기본적인 생계를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사는 삶이였고,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길러서 자급자족하는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냄에 있어서 부유함이나 가난함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복음 사역에 중심을 두셨습니다. 제자들이 감당할수 있는 만큼 기준을 제시하신것입니다. 

제자들은 잠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였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굶더라도 버틸수 있는 시간이였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지금시대에 무조건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의 의미는 분명히 새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필요한 만큼, 더 이상의 것을 소유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의 삶이며, 사명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일부러 가난할 필요는 없지만 부유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면서, 주시는 은혜속에 감사함을 누리는 것이 바로 제자의 삶이였습니다. 


신학교를 입학하고 교육전도사로 교회 사역을 시작하고, 말씀과 찬양교회를 개척하기까지 20년이 넘게 

많은 교회와 목사님들과 사역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보았습니다. 

‘검소’한 것과 ‘가난’은 다릅니다. ‘부함’와 ‘은혜’도 다릅니다. 

‘가난’을 ‘검소함’으로 자랑하는 이들도 있었고, ‘부함’을 ‘은혜’인것처럼 포장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아쉽게도 존경하는 목사님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게으름'으로 인한 '가난'을 검소함으로 생각하는 분들, 물질의 풍요에 갇혀서 목회는 뒷전이 되어버렸음에도 

그것을 은혜라고 자랑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검소함은 부유함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잡고 사는것입니다. 

은혜는 정직함으로 주어지는 가난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것입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의 삶은 물질에서만 검소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겸손하였습니다. 


그것이 당연해야 함에도, 목회현장에서 그것은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를 목회자라고 부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목회, 즉 목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목회보다 다른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았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기대하는 이유도 더 많은 사명을 감당하기 보다는 

큰 교회로서의 위치를 얻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보였습니다. 

목양에 관심이 없는 목회자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다짐한 것 중의 하나가, 담임으로 목회를 시작하면, 목양의 이유 외에는 교회의 

자리를 지키는 목사가 되어야 겠다는 서원을 했습니다. 

'주의 종'이라든지, '대언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좋아하면서, 정작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겸손은 

실패한 목회처럼 말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니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닌 ‘성공’이 은혜의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전도를 하다가 우연히 골프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이야기가 기가막힙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단골로 와서 골프를 많이 치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면 

교회에 나갈 생각이 조금도 안 생긴다는것입니다. 

주식이야기부터, 새로 바꾼 자가용에 대한 이야기, 성도들에 대한 험담까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캐디들이 

함께 있는대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일하는 직원들을 하대하고 함부로 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 분의 머리에는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가득차 버렸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귀동냥으로 들은 성경의 이야기와 소위 성공했다는 목사들의 모습이 너무 달랐기에 

교회만 쳐다보면 정이 뚝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공은 세상의 성공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의 성공은 좋은 집, 좋은 환경으로 드러나지만, 교회의 성공은 '복음'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와있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어느새 교회의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부자들이 오면 환영하고, 빨리 직분을 줘서 다른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다보니 큰 교회에서 항존 직분자가 되려면 세상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지금 교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70% 이상이 미자립교회입니다. 그런데 10%가 되지 않는 대형교회들은 앞장서서 사명을 감당하고 

지체된 교회를 돌아보아야 함에도, 더 큰 교회, 더 많은 땅을 사서 재정적인 부유함을 추구합니다. 


수도권의 어느교회는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보상을 받아서는 성도들이 100명 조금더 되는데 

5천평이 넘는 땅을 사서 교회를 으리으리하게 짓고, 담임목사의 차량을 수입차량으로 바꾸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과연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실까요? 

교회가 오래 되어서 보수해야 한다면, 혹은 교회의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를 구입한다면 

당연히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단지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도다. 마23장24


예수님께 경고를 받았던 그들의 모습을 교회가 고스란히 배우고 있습니다. 

목사가 재력이 있는 자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을 항존직분자로 세워 자신의 자리를 

든든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작은 고깃배의 ‘어부’를 부르셨는데, 많은 교회는 큰 배를 가진 ‘선주’를 찾아다닙니다. 

목회의 부재입니다. 

목사에게 심방을 받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있는데, 목사는 부자들과 골프를 치고, 비싼 취미생활에 

여유를 가집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목사도 인간인데..” 맞습니다. 하지만 소명과 사명을 감당할때에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안을 사모해야 합니다.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시장에서 좌판을 하는 연세 많으신 권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맡은 교구도 아니였습니다. 

“목사님 저희집에 심방 좀 와주세요”

저는 권사님의 연세가 많으시고, 기억력이 좋지 않으셔서 교구 목사를 착각하셨나보다 

생각을 했습니다. 

“권사님 제가 담당 교구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릴께요”

그런데 권사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구 목사님에게는 벌써 세 번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볼 때 마다 잊었다고 하세요. 

그런데 우리 구역에 대기업에 일하는 자녀를 둔 권사가 있는데, 그 집에는 벌써 2번이나 심방을 갔습니다.”


그 권사님의 표정에서 목회자에 대한 서운함과 자신의 형편에 대한 아쉬움이 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교구에 비슷한 일들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결국 몇몇 교인들이 당회에 항의를 해서, 

그 교구 목사는 3개월간 설교 및 성찬 금지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우리안에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돈에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며 헌금을 강요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질때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헌금을 가르치셨습니다. 가난한 여인의 두 렙돈이 부자들의 금화보다 귀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가난한 여인의 두렙돈보다는 금화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억지로 가난할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부유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많은 돈을 소유하게 되더라도 겸손함으로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목사 모임에서 어느 대형교회의 목사님이 안식년을 2달간 보내게 되었는데, 교회에서 재정적으로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그 돈이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작은 교회의 목회자 1년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임에도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는 더 많이 줬다는 식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참 불편했습니다. 안식년은 말 그대로 쉬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영적인 충전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2달간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잡아놓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새로운 목회를 위한 쉼이 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안식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것이라면 총회적인 차원에서 모든 교회의 목사들이 안식년을 지킬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기도원에 들어가서 분주한 목회를 잠시 내려놓고 더 깊은 말씀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심지어 안식년 날짜를 바꾸어서 친한 목사들, 재정적으로 넉넉한 목사들끼리 해외여행을 가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것 일까요?


가난한 목회자는 쉼이 필요없을까요? 

가난하기 때문에 쉼없이 일해야 하고, 부유하기 때문에 몇 달간 돈 걱정없이 가족여행을 

안식년이라는 이름으로 보내야 할까요?


신학교 다닐때에 한 후배가 유학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에 공부에 딱히 큰 관심이 없었던 후배라 의외였습니다. 

“갑자기 공부에 목표가 생긴거냐?”라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형님! 300명 이상되는 교회 담임으로 갈려면 유학이 필수입니다. 형님도 유학이나 이민 목회를 생각해 보세요.”


이것이 현실이고,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은 신학교수나 이민목회에서 성공한 목회자를 초빙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습니다. 

담임목회자를 청빙하는 서류에서 박사학위가 없거나, 국내 신학교 이력만 있으면 빼버립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병들어 가는 이유를 찾기는 쉽습니다. 

물론 학위가 전혀 필요없는 것은 압니다. 합당한 자격은 필요합니다. 

무분별한 목사안수가 이루어지는 교단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위가 전부가 되어버리면 이미 교회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끈 순교자들중에 학력이 뛰어나서 순교한 분들이 몇이나 될까요?

우리는 다시 복음에 매어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합시다. 부유함 속에서도 검소함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풍요로움이 아닌 은혜의 삶을 사모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가는 말씀과 찬양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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